8월의 사가, 아리타
그동안 나는 일본의 소도시, 시골 여행이 하고 싶었다.
그곳엔 아름다운 자연과 정돈이 된 듯, 아닌 듯한 일본 특유의 정갈함 그리고 고요함이 있을 것 같았다.
여행 책자와 지도를 통해 여러 지역을 살펴보던 중 눈길이 멈춘 곳은 사가.
자연으로 둘러싸인 규슈 내에서도 사가는 특히나 '조용한 시골마을'스러운 느낌이었다.
이미 내가 원하는 여행지의 조건에 부합했는데 여기에 우리와 깊은 연관이 있는 도자기마을이 있다 하니,
내게는 이곳을 택하지 않을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다.
사가에 대해, 도자기마을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대하던 8월 14일, 드디어 사가에 입성!
사가역에서 아리타행 기차를 타고 아리타역으로 향했다.
아리타역은 사가역보다 더 소박한 모습이었다.
작은 역사가 표 끊는 곳, 편의점, 관광안내소, 대기의자만 몇 개만으로 꽉차있었다.
관광안내소 옆엔 기념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둔 초벌된 도자기가 있었다.
나도 하나 데려왔다. 컵받침으로 쓰면 좋을 듯!
한국어판 지도도 받아들고, 놀러가기 시작~!
가장 가고팠던 도잔신사를 향해 걸었다. 육교가 나올 때까지 걷다 왼쪽으로 꺾어 또 한참 쭉 걷기.
8월 중순의 사가는 그을리는 게 눈에 띌 정도로 더웠다.
걷기가 지속될 수록 볕 때문에 지쳐갔는데 아이스크림 하나 물었더니 금세 다시 힘이 났다.
'도잔신사' 표시판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자, 돌계단이 보이고 그 위에 기찻길이 있었다.
기찻길을 마주칠 때면 여기가 일본이라는 게 확 느껴진다지?
신사로 올라가자 보이는 도리이.
어떻게 도리이를 도자기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이미 역에서부터 난간, 안내판, 지도, 신사 현판, 각종 조형물 등 도자기로 도배가 되어있는 아리타지만 이건 아무래도 신기하다.
도잔신사는 조선인 도공 이삼평을 신으로 모시는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많은 조선의 도공들을 납치해왔다.
이 중 한 명인 이삼평은 도자기 제작 기술이 없던 일본에서 원료를 발견해내어 자기를 만들어냈다.
이로 인해 깊은 시골인 아리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자기마을이 된 것이다.
그런데 도잔신사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쓸쓸한 느낌이었다.
손 씻는 물도 고인지 한참인지 지저분하고 찾는 이도 거의 없어 보이고...
물론 활기찬 분위기의 신사는 흔치 않은 것이겠지만은, 아마도 이역만리로 끌려온 도공들의 척박한 삶이 외로이 방치되어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들었던 듯하다.
나중에 오미쿠지 뽑을 때쯤 일본인 남녀 한 쌍이 와 참배하는 걸 보곤 마음이 살짝 놓이긴 했지만.
나는 점에서 중길이 나왔다!
내용은 원래 혼자만 알고 있는 거라 해서 비밀로 하고 있는데, 중길도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종이를 신사에 묶어두고 오는 것도 '흉', '말길'에만 해당되는 건지...
나는 잘 몰라서 내 종이를 철망에 묶고 왔다.
신사는 아담한 규모였지만,
다른 곳들과는 달리 바닥에 흰 자갈이 깔려있고 신사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이 도자기로 만들어져 이색적이고 재미있었다.
한참을 구경하고 사진 찍고, 그리고 앉아있다 나왔다.
오는 길, 열려있던 상점들이 하나 둘 문을 닫고...
찜해놓았던 국자거치대는 살래야 살 수가 없게 되었고...
돌아오는 길엔 타려 했던 커뮤니티 버스는 끊겨 영락 없이 왔던 길을 도로 걸어 내려가야 하고...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아까는 더위에 지쳐 잘 보이지 않았던 근처 소담스런 집들이 눈에 들어와서 좋고
이런 동네, 이런 집에서 살아보고 싶단 생각이 들만큼 맘에 드는 곳을 발견해내서 좋고.
무엇보다 가장 와보고 싶었던 곳을 보고 가니 신나고 뿌듯했다.
아직 못돌아본 곳이 많아 또 가보고픈 사가.
아쉬워 하지 않고 욕심내지 않고
사가의 느낌 따라, 나는 차근차근
하나씩 조금씩 이곳을 알아가고 싶다.